최근 초식남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초식남이란 전통적이고 강한 육식남에 반하는 온순한 남자를 뜻한다.
육식남이 일도 사랑도 경쟁적이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면,
초식남은 사랑보다는 자신의 취미에 빠져들고 타인과의 경쟁을 피하려 든다.
초식남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성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를 이성이 아닌 친구로 대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둘만 있더라도 성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초식남을 부각시키며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결혼 못하는 남자>의 지진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30분 다큐>에서도 초식남이 나왔는데, 여기에서는 유명한 사진작가와 소아과전문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소득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초식남의 숫자는 분명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은 비정규직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기본적으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만약 이성이 서로 끌리지 않고 섹스가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종이 어떻게 번식을 하겠나?
이런 면에서 볼때 초식남은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현대 사회에서는 놀거리가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 심심한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밌게 놀 수 있다. 책 읽고, 티비 보고, 영화 보고. 그러다가 정 누군가랑 얘기하고 싶으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면 그만이다.
성욕의 발산 역시 충분히 혼자서 가능하다.
인터넷만 접속하면 음란물이 범람하는 마당에 뭐가 문제겠는가?
(실제로 포르노 산업의 발달로 인해 부부간의 섹스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섹스마저도 아웃소싱하는 시대가 온 건가?)
한마디로 혼자서도 잘 놀기 때문에 굳이 이성과 사귈 필요성을 못 느낀다.
두번째로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사회적 문제다.
남자가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어쨌든 장기적으로 볼때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과연 요즘 20, 30대 남자들이 가장이 될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내부에서는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하고, 외부에서는 경제위기가 몰아 닥치고 있다.
적당한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겠지만, 치열한 경쟁은 애초에 경쟁을 포기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한 여자를 두고 주위에 백 명의 남자들이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 거기 끼고 싶은 마음이 나겠는가?)
한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에게 있어서 연애과 결혼은 먼 얘기다.
특히나 한국의 살인적인 집값과 높은 물가, 그보다 더 높은 양육비와 사교육비를 생각한다면,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이 경우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연애와 결혼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
한달 100만원은 가정을 이끌어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혼자서 쓰며 살기에는 적당한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또는 뒤로 미루고) 대신 그 돈을 자신의 취미 생활에 쓴다.
첫번째 경우도 문제지만, 두번째 경우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는 자발적인 초식남이 아닌, 비자발적인 초식남이다. 실제로는 고기를 좋아하나, 돈이 없어서 풀을 뜯고 있는 것과 같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성욕이라는 본능을 포기한다는 생물학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목이 잘리는 것보다는 거세를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일단 목숨부터 살고봐야하지 않겠는가?)
언론에서는 초식남을 깔끔한 외모에 돈도 많고, 그러나 이성에게는 친구 이상의 관심이 없다...라는 식으로 포장해서 떠들어대기 바쁘다.
하지만 그런 사람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건 일부의 얘기고, 실제로는 그 수십, 수백배에 달하는 비자발적인 초식남들이 널려 있다.
가뜩이나 낮은 한국의 결혼율과 출산율은 앞으로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2, 30대의 경제 사정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결혼도 출산도 미룰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고, 굉장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부동산값을 예로 들자면, 한국에서는 지속적인 인구증가와 버블로 부동산값이 폭등했고, 이로인해 혼수비용 역시 천문학적으로 올랐다.
이럴 때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천문학적인 부동산값을 마련하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결혼을 늦추고 부모님 집에 계속 얹혀 사는 것이다. 결혼을 안 하니 출산율이 떨어지고, 출산율이 떨어지면 인구가 감소해, 집값은 내려갈 것 아닌가?
사교육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을 낳으면 높은 사교육비를 부담해야하니, 처음부터 아예 안 낳으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란 말인가?
어쨌든 저출산이든, 결혼율 감소든, 초식남 열풍이든 간에,
이 모든 것들은 사회적 모순에서 출발을 했고, 그 모순을 수정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하던 중에 탄생한 것이다.
사회 전체가 노력을 해서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계속 유지되고 발전할 테고,
그러지 못하면 그냥 망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상황 같아서는 모순이 해결되기 보다는 심화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2500년이면 한국인이 멸종한다는데 배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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